부산대학교 교수, 김재원 동문(수학교육과 졸업)을 만나다!
부산대학교 교수, 김재원 동문(수학교육과 졸업)을 만나다!
※ 인터뷰 기사는 동국 커뮤니티 Vol.14(2014년 가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첫 수업을 앞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김재원 동문은 신임 교수로 부임한 기쁨도 잠시 ‘무엇을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걱정과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지만 김재원 교수는 설렘과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강의실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첫 수업의 각오와 결심이 한결같기를 응원해 봅니다.
▲ 부산교육대학교 신임 교수
김 재 원 동문 (수학교육과 93학번)
김재원 동문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수료한 후 200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과 대만, 중국 등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특히 대만 연구소에서는 평생의 배우자도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도 서강대학교 연구원, 영남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한 바 있습니다.
2014년 9월, 부산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 신임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수학에 눈뜨다
저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특히, 수학교육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교수님 들의 지도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을 만큼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입학할 당시만 해도 저에게는 대학교 수학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럴 때마다 교수님들께서는 스스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다시 생각해 보라 하셨습니다.
풀이과정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질문하고 공부하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조금씩 수학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공부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끔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또, 현실에서 수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많이 알려주셔서 더욱 흥미를 가졌습니다.
노력을 쌓다
수학교육과는 커리큘럼이 빡빡했습니다.
1주일마다 리포트와 시험이 있었고, 적분 문제 1,000문제를 일주일 안에 풀어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님들께서 200문제, 300문제를 내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풀이과정을 어떻게 채점하고 평가를 하셨는지…
정말 열의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학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학과 수업에 매진하며 꾸준히 노력을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기상시간은 늘 새벽 다섯시였습니다.
잠을 자더라도 도서관에 가면 한 문제라도 더 풀게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진짜 모르는 것이 있다면, 열 번 스무 번이 아니라 1년, 2년을 보며 이해를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수학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어요. 장학금을 받고 조기졸업을 하면서 성취감도 느꼈습니다.
수학 덕분에 저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도 똑같은 음료를 스무 잔 시켜가면서 회화 공부를 했어요.
어떤 일이든 노력이 쌓이면 결실이 있을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참 선생이 되자
부산교육대학교에 막상 오고 나니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 대학교와 달라서 초등학교 수학 위주로 가르쳐야 하니, 기존 연구분야와도 거리가 있었습니 다.
또, 이곳 학생들은 실력이 출중한 반면 수포자(수학 포기자)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민이 많았는지 첫 수업을 며칠 앞두고서 장염을 앓기도 했습니다.
해답은 대학생활을 통해 터득했듯 노력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교육학 분야에 더 공부를 하고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신임 교수로서 목표가 있다면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교수는 제가 가진 직책이지만, 앞으로 제가 갖고 싶은 이름은 ‘선생’입니다.
학생들이 제가 가르치는 것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짚어보고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진정 ‘자랑스러운 동국인’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학 3학년이 되어서야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던 것 같아요.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학과 동기들이나 교수님, 선후배를 만나면서 활동적으로 바뀌었어요.
다른 곳에 가서도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해준 대학생 활이 저에겐 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